티스토리 뷰
목차

2026년 8월 13일, 크레이지아케이드가 25년의 서비스를 끝으로 문을 닫습니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도 모르게 잠깐 멈칫했습니다. 몰랐던 건 아닌데, 막상 날짜가 찍히니 묘하게 허전하더군요.
붐힐마을이 25년 만에 문 닫는 이유
크레이지아케이드는 2001년 넥슨이 출시한 캐주얼 멀티플레이 게임입니다. 한 화면 안에서 물풍선을 던져 상대를 가두고 터트리는 방식으로, PC방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2000년대 초반 그야말로 국민 게임 반열에 올랐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까지 이 게임을 꽤 열심히 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건 컴퓨터 한 대를 동생들과 차지하려고 매일같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크레이지아케이드가 2PC 동시 플레이를 지원한다는 걸 알고 나서야 겨우 평화가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결국엔 또 싸웠지만요.
2026년 6월 11일, 게임 내 붐힐마을에 공식 서비스 종료 공지가 게재되었습니다. 종료 예정일은 2026년 8월 13일이며, 그 전까지 경험치와 루찌 획득 상시 10배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최근 결제 이력이 있는 이용자는 환불 신청 기간(9월 16일까지)을 반드시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번 섭종이 갑작스러운 결정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징후는 이미 2026년 4월에 나타났습니다. 넥슨이 수익성이 낮은 IP(지식재산권)를 정리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 그 신호였습니다. 여기서 IP란 게임 캐릭터, 세계관, 브랜드 가치 등 게임 서비스에 얽힌 모든 지적 자산을 의미하는 업계 용어입니다.
넥슨 재무 구조와 수익성 악화의 현실
크레이지아케이드 섭종을 단순히 오래된 게임 하나의 퇴장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결정이 넥슨의 재무 전략과 직결된 문제라고 봅니다.
2025년 넥슨 그룹의 연간 총매출은 약 5조 원으로, 창사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출처: 넥슨 IR 공시). 외형만 보면 잘 나가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세부 숫자를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영업이익(Operating Profit)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영업이익이란 매출에서 인건비, 서버 운영비, 마케팅비 등 실제 사업 비용을 빼고 남은 순수 사업 이익을 뜻합니다. 2024년 1조 1,630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이 2025년에는 9,609억 원으로 약 17.4% 감소했습니다.
더 눈에 띄는 건 당기순이익(Net Income)의 변화입니다. 당기순이익이란 영업이익에서 투자 손익, 세금 등을 모두 반영한 뒤 최종적으로 회사 금고에 남는 돈을 의미합니다. 2024년 약 2조 2,000억 원이었던 수치가 2025년에는 859억 원으로 급감했습니다. 다만 이는 2024년에 넥슨이 보유 중이던 핀테크 기업, 가상화폐 거래소 등 비게임 계열사를 대거 매각하며 일시적으로 수익이 치솟았던 기저 효과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넥슨이 처한 실질적인 상황은 이렇습니다.
- 매출은 역대급이지만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줄고 있다
- 비게임 자산 매각이 마무리되며 일회성 수익이 사라졌다
-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 수익을 내지 못하는 구형 IP를 유지할 여유가 줄어든 상황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넥슨은 패트릭 쉐도룬드 초대 회장 체제로 전환하며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비효율 IP 정리를 공식 방침으로 내세웠습니다(출처: 넥슨 공식 뉴스룸). 크레이지아케이드는 그 정리 대상에 포함된 것입니다.
모바일 전환 실패와 IP의 미래
IP의 가치가 높아도 사람들이 실제로 접속하지 않으면 기업 입장에서는 유지 비용만 나가는 구조가 됩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크레이지아케이드 모른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정도로 유명한 게임인데, 제가 마지막으로 로그인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안 납니다.
넥슨은 모바일 게임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크레이지아케이드 IP를 여러 차례 모바일로 전환하려 했습니다. 크레이지아케이드M을 포함해 여러 버전이 출시됐지만,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관련 서비스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상 모바일 전환 전략이 모두 실패한 셈입니다.
여기서 모바일 전환 실패가 갖는 의미를 조금 더 짚어봐야 합니다.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신규 유저 유입(User Acquisition)이란 새로운 이용자를 끌어오는 핵심 성장 지표입니다. 이 수치가 낮으면 기존 이용자 이탈을 막아도 서비스 유지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크레이지아케이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세대 입장에서는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 같은 검증된 캐주얼 게임을 두고 굳이 낯선 타이틀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도 주변 10대들에게 물어봤을 때 "크아가 뭐예요?"라는 반응이 돌아왔을 때 꽤 씁쓸했습니다.
그렇다고 IP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닐 수 있습니다. 넥슨은 최근 '넥슨 리플레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형 IP를 외부 개발사에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일랜시아, 택티컬 커맨더스 등이 이미 언급된 상황인 만큼, 크레이지아케이드 IP도 언젠가 이 경로를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물론 현 단계에서는 기업이 이를 추진할 동인이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비스 종료가 아쉽다는 분들도 계시고, 어차피 아무도 안 했던 게임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섭종이 크레이지아케이드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IP를 운영해온 넥슨의 게임들을 즐겨온 이용자들 사이에서 운영 신뢰도에 대한 물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2026년 8월 13일 이전에 배찌와 다오를 다시 만나보고 싶은 분이라면 지금 접속해 보시는 걸 권합니다. 추억이 아직 거기 있는 동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