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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앞 오락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올려놓고 차례를 기다리던 기억, 혹시 있으신가요? 저는 그 줄 맨 앞에서 항상 노란 모자 쓴 캐릭터를 골랐습니다. 바로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그 시절 오락실을 평정했던 게임입니다. 그냥 강하고 재밌는 게임이라고만 알았는데, 파고들수록 몰랐던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농협 아저씨의 정체, 캐릭터 이야기
혹시 게임 속 캐릭터 이름을 제대로 알고 계셨나요? 저는 솔직히 이름 같은 건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냥 노란 모자, 여자, 헌터, 돼지. 그게 전부였죠.
정식 명칭으로 보면 이 게임에는 잭 텐렉, 한나 던디, 무스타파 카이로, 메스 오브라도 비치, 총 네 명의 플레이어블 캐릭터(Playable Character)가 등장합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란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를 뜻합니다.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는 잭 텐렉이 주인공이지만, 오락실에서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무스타파였습니다.
무스타파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닙니다. 공격 리치(Reach), 쉽게 말해 공격이 닿는 거리가 길고, 발동 속도와 히트박스(Hitbox) 판정까지 세 가지가 황금 밸런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히트박스란 게임 내에서 공격이나 피해가 적용되는 충돌 영역을 뜻합니다. 100원 하나로 최대한 오래 버텨야 했던 그 시절, 이 캐릭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 무스타파라는 이름이 이슬람권 국가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갔다는 겁니다. 파키스탄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이 게임을 아예 '무스타파 게임'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캐릭터 하나가 만들어낸 파급력이 상당하다고 느꼈습니다.
공룡이 왜 거기서 나와, 세계관의 비밀
게임을 처음 할 때 솔직히 이런 생각 안 드셨나요? 사람이 공룡이랑 왜 같이 살고, 돌연변이는 또 왜 나오고, 자동차는 왜 있는 건지. 저도 그냥 넘겼다가 나중에 설정을 알고 나서 꽤 놀랐습니다.
이 게임의 배경은 서기 2513년입니다. 환경오염으로 지표면 생존이 불가능해진 인류가 600여 년간 지하에서 생활하다가 지상으로 귀환했더니, 자정 능력(Self-purification)으로 생태계가 재건된 지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자정 능력이란 생태계가 외부의 개입 없이 스스로 오염이나 손상을 회복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회복이 너무 철저했다는 점입니다. 생태계가 중생대 수준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공룡이 다시 지구를 활보하게 됐다는 거죠.게임 속에서 돌연변이 공룡과 개조 생명체가 우글거리는 데는 이런 맥락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배경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게임 속 세계관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연결됐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냥 "캡콤이 공룡 넣고 싶었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거든요.
이 세계관은 캡콤의 순수 창작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계관(World Setting)이란 게임이나 이야기의 시간적·공간적·사회적 배경을 아우르는 총체적 설정을 의미합니다. 미국 만화가 마크 슐츠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IP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래픽 노블이란 단행본 형태로 출판되는 성인 대상 만화를 의미하며, 일반 연재 만화보다 서사 구조가 복잡한 경우가 많습니다. 원작 제노조익 테일즈는 1987년에 첫 타이틀이 발행되었고, 훗날 미국 CBS에서 1993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며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캡콤은 바로 이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벨트 스크롤 액션(Belt Scroll Action) 장르로 게임화했습니다. 벨트스크롤 액션(Belt Scroll Action), 즉 횡스크롤 방식으로 캐릭터가 화면을 가로질러 전진하며 적을 처치하는 장르에서는 이런 세계관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 스토리를 이해하는 게 필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배경을 알고 나서 플레이하면 몰입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앞으로 가며 두들겨 패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이 황폐해진 세계를 살아남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처럼 게임 장르의 특성상 스토리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세계관이 탄탄하게 받쳐주면 플레이어가 캐릭터와 동질감을 느끼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벨트 스크롤은 구조가 단순한 장르이지만, 그 뒤에 이런 서사가 있었다는 게 지금도 인상적입니다.
후속작의 참패, 그리고 일론 머스크
캐딜락의 후속작 이야기를 아는 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걸 알기 전까지는 아예 몰랐습니다.
1995년, 같은 IP를 사용한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두 번째 대격변이 PC와 세가 CD 플랫폼으로 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캡콤이 만든 게임이 아닙니다. 제작사도, 장르도, 플랫폼도 모두 달랐습니다. IP(Intellectual Property)를 공유했을 뿐, 완전히 별개의 작품이었습니다. IP란 게임이나 캐릭터, 이야기 등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의미하며, 원작자의 허락 하에 다른 제작사가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후속작의 장르는 레일 슈터(Rail Shooter)였습니다. 레일 슈터란 플레이어가 이동 방향을 직접 통제하지 못하고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며 적을 사격하는 슈팅 게임 방식입니다. 우리가 알던 벨트 스크롤의 통쾌한 타격감은 온데간데없었고, 반복되는 배경과 어색한 커브 모션으로 혹평을 받았습니다.
결국 판매량 2만 장에도 못 미치며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게임을 만든 회사가 로켓 사이언스 게임즈(Rocket Science Games)인데, 당시 이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재직했던 인물이 바로 일론 머스크입니다. 그의 손길이 직접 이 게임에 닿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소규모 회사였던 만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 후속작의 실패 사례는 단순히 흥행 참패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작의 장르적 강점을 포기하고 IP만 빌려왔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게임의 완성도가 브랜드 인지도를 절대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캡콤의 90년대 벨트 스크롤 라인업 중에서도 이 게임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재밌어서가 아니라 탄탄한 원작 IP와 장르적 완성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역사 보존 측면에서의 아케이드 자료는 출처: 캡콤 공식 사이트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를 다시 떠올리면, 게임 자체보다 그 앞에서 함께 소리 지르던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공룡을 두들겨 패는 행위 하나에도 이유가 생기고, 캐릭터가 단순한 주먹질 도구가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는 누군가처럼 느껴졌습니다. 벨트스크롤이라는 장르가 단순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 안에 단단한 배경이 깔려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걸 이 게임이 증명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오락실에서 100원짜리 하나 쥐고 무스타파를 골랐던 그 선택이, 사실은 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고요. 아직 스토리를 모른 채로 이 게임을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다시 플레이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번엔 무스타파 말고 다른 캐릭터도 한 번 써보시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