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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저는 처음에 임진록을 그냥 스타크래프트 못 따라가는 국산 아류작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그 편견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죠.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임진록 시리즈는 스타크래프트가 PC방을 지배하던 시절, 조선이라는 전혀 다른 무대 위에서 조용히 자기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스타 천하에 조선 병사가 나타났다 — 영웅 유닛이 만든 차이

    1997년 당시 RTS(Real-Time Strategy), 즉 실시간 전략 게임 장르는 외산 타이틀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워크래프트 2, 커맨드 앤 컨커, 그리고 이후 스타크래프트까지. 제가 처음 임진록을 접했을 때 솔직히 비교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그런데 화면에 조선 병사가 등장하고 이순신 장군이 전장으로 나서는 순간, 뭔가 다른 감각이 왔습니다.

    임진록이 다른 RTS와 결정적으로 갈리는 지점은 바로 영웅 유닛 시스템이었습니다. 영웅 유닛이란 쉽게 말해 이순신, 권율, 김시민 같은 실존 인물을 게임 안에서 직접 조작할 수 있는 특수 캐릭터를 뜻합니다. 단순히 강한 유닛이 아니라, 고유 스킬을 발동하고 주변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전략적 축으로 설계된 존재였습니다.

    당시 다른 RTS들은 병력을 대규모로 생산해 수 싸움을 벌이는 구조가 중심이었습니다. 영웅 유닛 하나가 전황을 뒤집는 경험은 꽤 낯선 것이었죠. 제가 직접 플레이하면서 가장 손에 땀이 났던 순간도 영웅을 어디에, 언제 투입하느냐를 결정할 때였습니다. 잘못 보냈다가 영웅이 잡히기라도 하면 그 전투는 사실상 기울기 시작했으니까요.

    스타크래프트와는 아예 다른 긴장감이었습니다. 이걸 단순한 국산 아류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영웅 유닛 중심의 전략 구조 자체가 당시 RTS 장르 안에서 꽤 실험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 이순신, 권율, 김시민 등 실존 인물이 영웅 유닛으로 등장하며 고유 스킬 보유
    • 영웅 유닛 전사 시 전황이 급격히 기울 만큼 전략적 비중이 높음
    • 조선의 화차, 판옥선 등 실존 병기가 유닛으로 구현되어 역사 고증과 전략이 맞물림
    요약: 임진록의 핵심은 실존 인물 기반 영웅 유닛 시스템으로, 단순 병력 수 싸움을 넘어 전략과 역사 체험을 동시에 구현했다.

    임진록 1편부터 조선의 반격까지 — 시리즈 계보가 말해주는 것

    임진록 시리즈를 한 편만 해봤다면 이 게임을 제대로 안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시리즈를 차례로 따라가면서 느낀 건, 작품마다 단순히 그래픽만 좋아진 게 아니라 전략 시스템 자체의 층위가 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1997년 출시된 1편은 시각적으로 워크래프트 2와 상당히 비슷한 인상을 줬습니다. 인터페이스도 투박했고 조작감도 세련되지 않았죠. 그런데 솔직히 그 투박함이 오히려 한국적인 정서와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1998년에 나온 임진록: 영웅전쟁에서는 그래픽이 정돈되고 신규 유닛이 추가됐는데, 특히 비행 유닛이 전장을 넘나드는 구성이 스케일을 확 넓혀줬습니다.

    시리즈의 정점은 2000년 출시된 임진록 2입니다. 이 작품부터는 조선, 일본에 명나라까지 참전해 3국 파전이 펼쳐집니다. 지형의 고저, 날씨, 기후 변화 같은 환경 요소가 자원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 즉 환경 시뮬레이션 요소가 도입됐습니다. 쉽게 말해 비가 오면 화약 무기의 효율이 달라지는 식이었죠. 세 진영의 플레이 방식이 인터페이스부터 유닛 스타일까지 전부 다르게 설계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출처: 한국게임데이터베이스).

    2001년 임진록 2 플러스 조선의 반격은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타이틀입니다. 전쟁의 무대가 조선에서 일본 본토로 넘어갑니다. 방어 일변도였던 조선이 역으로 치고 들어간다는 설정이 통쾌함을 줬죠. 여기에 자체 멀티 서버인 HQ넷을 통한 실시간 멀티플레이 지원도 시도됐는데, 당시 국산 RTS로선 꽤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요약: 임진록 시리즈는 1편부터 조선의 반격까지 매 작품마다 전략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진화했으며, 임진록 2가 3국 파전과 환경 변수를 도입하며 절정을 찍었다.

    동토의 여명, 그리고 아쉬움 — 미완으로 끝난 조선판 디아블로

    임진록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지 않지만, 가장 아쉬운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동토의 여명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두고 그냥 미완성 외전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기억합니다.

    동토의 여명은 임진록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되, 장르를 아예 액션 RPG로 전환한 시도였습니다. 액션 RPG란 플레이어가 하나의 캐릭터를 직접 조작해 성장시키며 스토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당시 디아블로가 대표적인 참고 모델이었습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한국판 디아블로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저는 꽤 대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데모 버전을 플레이해봤는데, 세이브가 되지 않고 잦은 강제 종료 현상이 있었습니다. 말끔한 플레이 경험은 어려웠지만, 그 데모 안에서도 한국적인 설정을 액션으로 풀어내려는 가능성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조선을 배경으로 한 액션 RPG는 희귀하니까요.

    결국 동토의 여명은 패키지 게임 시장의 급속한 침체, 자금 회수 불확실성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정식 출시 없이 중단됩니다. HQ팀이 임진록 IP를 통해 장르 확장까지 도전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한국 게임 역사에서 놓쳐선 안 될 챕터라고 생각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 RTS가 아닌 액션 RPG로의 장르 전환 — 임진록 세계관 그대로 계승
    • 디아블로 스타일의 캐릭터 성장, 아이템 파밍 요소 기획
    • 데모까지만 공개된 채 정식 출시 없이 프로젝트 중단
    요약: 동토의 여명은 임진록 세계관을 액션 RPG로 확장하려던 과감한 시도였지만, 시장 침체와 개발 난항으로 데모에 그치며 미완으로 남았다.

    임진록 2가 씨앗이 됐다 — 거상온라인이라는 뜻밖의 계보

    임진록이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 유산이 전혀 예상 못 한 곳에 살아있었습니다. 거상온라인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제가 꽤 놀랐던 게, 지금도 서비스 중인 거상온라인의 베이스가 임진록 2의 게임 소스라는 점이었습니다.

    거상온라인은 임진록 2의 전투 시스템을 바탕으로 무역이라는 개념을 얹어 만든 온라인 게임입니다. 여기서 거상(巨商)이란 큰 상인을 뜻하는데, 게임 안에서 플레이어는 전투와 상업 활동을 병행하며 성장하는 구조를 갖습니다. RTS의 전투 DNA와 경영 시뮬레이션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입니다.

    임진록 2가 이런 온라인 게임의 뼈대가 됐다는 사실은 이 게임의 기술적 완성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냥 향수 속에 묻힌 레트로 게임이 아니라, 실제로 이후 작품에 영향을 준 현실적인 기반이었던 셈이죠.

    임진록 2 리마스터를 바라는 목소리는 지금도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나옵니다. 현실적으로 HQ팀이 해체됐고 IP 귀속 상황도 불명확하기 때문에 공식 리마스터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개인적으로 서양 판타지나 SF 배경 게임은 넘쳐나는데, 임진록처럼 우리 역사를 진지하게 전략 게임으로 풀어낸 작품은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누군가 이 계보를 이어받아 제대로 된 후속 타이틀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도 있습니다.

    • 거상온라인은 임진록 2의 게임 소스를 기반으로 개발된 온라인 게임
    • 전투 시스템은 임진록 2의 DNA를 계승하고 무역·경영 요소를 추가한 구조
    • 현재까지 서비스 중이며, 임진록 시리즈의 유산이 실질적으로 살아있는 사례
    요약: 임진록 2의 게임 소스는 현재까지 서비스 중인 거상온라인의 기반이 됐으며, 이는 단순한 레트로 게임을 넘어 실질적인 기술 유산임을 증명한다.

    임진록은 스타크래프트보다 그래픽이 떨어졌고 조작감도 거칠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게임을 계속 켰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한글 풀 더빙 시나리오로 우리 역사를 내 손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영어를 몰라도, 스토리를 전부 알아들으며 게임할 수 있다는 게 당시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산 RTS가 외산 게임의 자본과 기술에 맞서기 어려운 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임진록이 남긴 방향은 분명합니다. 우리 이야기를 전략 게임으로 풀어냈을 때, 그건 단순한 게임 이상의 경험이 된다는 것입니다. 임진록을 아직 못 해본 분이라면 임진록 2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EAL7HgPeUU&list=PLjGnosKj-qfs0tMHHcXdkN9AT9Gw0LBNn&index=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