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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하나를 통째로 바꿔버린 게임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캐슬배니아: 월하의 야상곡은 1997년 발매 당시 기존 악마성 팬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지만, 결국 2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우며 메트로배니아라는 장르 자체를 정립해버렸습니다. 저도 처음 이 게임을 접했을 때 알루카드가 잔상을 남기며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그만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메트로배니아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이 게임인가
혹시 좋아하던 게임 시리즈의 속편을 샀는데 장르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월하의 야상곡을 처음 받아든 기존 악마성 팬들이 정확히 그 기분이었을 겁니다.
메트로배니아(Metroidvania)란 닌텐도의 메트로이드(Metroid)와 코나미의 캐슬배니아(Castlevania), 두 시리즈 이름을 합친 장르 명칭입니다. 쉽게 말해, 넓은 맵을 자유롭게 탐색하되 처음에는 갈 수 없는 구역이 있고 새로운 능력을 얻으면서 점차 이동 가능한 범위가 넓어지는 탐색형 액션 게임을 가리킵니다. 이 장르명이 생겨난 데 월하의 야상곡이 절반의 공로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악마성 시리즈는 채찍을 쓰는 벨몬트 가문의 후손이 직선형 스테이지를 돌파하며 드라큘라를 처치하는 정통 액션 어드벤처였습니다. 그런데 월하의 야상곡은 주인공을 드라큘라의 아들인 알루카드로 바꾸고, 광활한 성 전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오픈 탐색 구조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기존 팬들의 반발이 얼마나 컸는지, 파이널 판타지 속편을 샀더니 갑자기 액션 RPG가 되어 있는 기분이라는 비유가 당시 커뮤니티에서 공공연히 돌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이 최종적으로 200만 장 이상을 판매하고 베스트판까지 재발매된 이유는 단 하나, 게임 자체가 압도적으로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팬층을 잃는 대신 라이트 유저와 신규 팬층을 훨씬 넓게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죠.
알루카드와 마도기, 탐험이 성장이 되는 구조
처음 성에 발을 디뎠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뭔지 아십니까? "저기는 어떻게 올라가지?"입니다. 제가 직접 플레이해봤을 때도 딱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는데 갈 수 없는 곳이 성 곳곳에 널려 있고, 그게 묘하게 사람을 자극합니다.
알루카드(Alucard)는 인간과 흡혈귀의 혼혈 캐릭터로, 벨몬트 가문의 채찍 대신 검과 마법을 기본 무기로 씁니다. 그리고 이 게임의 핵심 시스템인 마도기(Relic)를 하나씩 얻어가면서 행동 범위가 폭발적으로 넓어집니다. 여기서 마도기란 알루카드의 잠재된 흡혈귀 능력을 깨워주는 특수 아이템으로, 박쥐로 변신하거나 이단 점프를 가능하게 하거나 안개 형태로 좁은 틈을 통과하는 등 이동 불가 구역을 하나씩 해제해주는 열쇠 역할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구조가 굉장히 영리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작정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새 마도기를 얻은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아, 그 막혀 있던 데 이제 갈 수 있겠다"는 목적지가 떠오릅니다. 탐험이 막막함이 아니라 성취감의 연속이 되는 거죠. 성의 지도를 펼쳐보며 아직 회색으로 남은 구역을 하나씩 밝혀나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들면서도 "저 위에 막혀 있던 방에는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또한 맵 달성도(Map Completion)라는 수치 시스템이 있어 자신이 성을 얼마나 탐색했는지를 퍼센트로 보여줍니다. 이 달성도를 채우는 과정이 때로는 번거롭기도 하지만, 수집욕과 완성욕을 동시에 자극하는 요소로 꽤 많은 플레이어를 오랜 시간 붙잡아두었습니다.
액션과 수집의 두 바퀴, 게임성을 만든 요소들
이 게임을 단순한 탐색 게임으로만 보면 절반만 본 겁니다. 월하의 야상곡은 탐색형 액션 RPG라는 분류에서 "액션" 쪽에 상당히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잔상 효과입니다. 알루카드가 움직일 때 특유의 부드러운 잔상을 남기며 이동하는 연출은 당시 기준으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 게임을 봤을 때 뭔지도 몰랐지만 움직임 하나에 반했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이 잔상 효과였습니다. 2000년대 이후 수많은 게임에서 이 연출을 따라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커맨드 입력형 필살기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MP(마나 포인트)를 소모해서 발동하는 필살기는 흡혈귀라는 설정을 잘 살린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헬 파이어(Hell Fire)로, 화면 안의 모든 적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그 양만큼 HP를 흡수하는 기술입니다. 이 스킬 하나가 게임 전체 난이도를 크게 낮춰준 덕분에 월하의 야상곡은 시리즈 중 압도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무기 시스템도 충실합니다. 몬스터를 처치하면 무기와 방어구가 랜덤으로 드랍되며, 장비에 따라 공격 형태와 속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특히 알카드 실드 등 희귀 장비는 수집 자체가 하나의 목표가 되어 공략집을 뒤지며 특정 몬스터를 반복 사냥하는 노가다를 기꺼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탐색 게임인 줄 알고 시작했다가 어느새 아이템 수집에 더 빠져 있는 저를 발견했으니까요.
월하의 야상곡의 주요 게임 요소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마도기 획득을 통한 단계적 탐색 범위 확장
- MP 소모형 커맨드 필살기(헬 파이어 등 흡혈귀 설정 반영)
- 몬스터 랜덤 드랍 기반 무기·방어구 수집 시스템
- 맵 달성도 퍼센트로 표시되는 탐색 완성 지표
- 클리어 후 리히터·마리아 플레이어블 캐릭터 해금
지금도 꺼내 드는 이유, 그리고 이 장르의 현재
게임이 나온 지 거의 30년이 다 돼가는데 지금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클리어하는 게임이 있다면 그게 진짜 명작 아닐까요?
월하의 야상곡은 예배당, 지하수맥, 도서관 등 각기 다른 분위기의 스테이지가 구성되어 있고, 각 구역에 맞는 BGM이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메인 테마인 드라큘라의 성(출처: YouTube 공식 플레이 영상)은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도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명곡입니다. 제 경험상 이 OST는 탐험의 긴장감과 고딕 호러의 분위기를 동시에 잡아내는 수준이 보통이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탐색하던 성이 통째로 뒤집히는 반전이 등장합니다. 같은 구조인데 거꾸로 뒤집혀 있으니 완전히 낯선 공간처럼 느껴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플레이타임을 단순히 늘리는 장치가 아니라 진짜 다른 경험을 주는 설계였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한 번 클리어하면 이름 입력 창에 특정 이름을 넣어 전작 주인공인 리히터나 마리아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데, 이게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주인공 이름 ALUCARD가 DRACULA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게임 안의 반전 구조와 이름 속 반전이 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안타까운 것은 이 게임 이후의 흐름입니다. 프로듀서 이가라시 코지 본인이 "월하의 야상곡 같은 작품은 다시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고, 실제로 이후 시리즈들은 본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판매량이 줄어들고 이가라시 코지는 코나미를 퇴사했으며, 악마성 시리즈는 2014년 이후 정식 속편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9년 모바일로 출시된 그림 오브 소울즈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서비스 종료됐습니다. 이가라시 코지가 독립 후 만든 블러드스테인드: 리추얼 오브 더 나이트(출처: IGDB 게임 DB)가 월하의 야상곡의 정신적 후계작으로 호평받고 있지만, 원작이 만든 기준을 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월하의 야상곡 지금 어디서 할 수 있나요?
A. 2020년에 모바일 버전이 3,900원에 출시되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선택지가 되었습니다. 키 설정 제한이나 조작감 차이 같은 단점은 있지만, 가격 대비 게임 경험 자체는 충분히 해볼 만한 수준입니다. PSP판 캐슬바니아 X 크로니클즈를 통해서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Q. 악마성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데 월하의 야상곡부터 해도 되나요?
A. 충분히 됩니다. 게임 자체가 전작인 피의 윤회의 마지막 장면부터 시작하지만, 스토리 파악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시리즈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면 편견 없이 이 게임만의 탐색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Q. 메트로배니아 장르를 처음 접하는데 이 게임이 어렵지 않나요?
A. 시리즈 전작들에 비해 난이도가 눈에 띄게 낮습니다. 회복 아이템과 장비 시스템 덕분에 어느 정도 노가다를 병행하면 보스전도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헬 파이어 같은 필살기를 활용하면 어려운 구간도 훨씬 수월해지니, 초보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Q. 맵 100% 달성이 가능한가요, 어렵지 않나요?
A. 가능합니다. 다만 숨겨진 방을 찾는 과정에서 벽을 일일이 쳐보거나 특정 조건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있어 공략집 없이 100%를 채우기는 꽤 번거롭습니다. 수집과 탐색을 즐기는 스타일이라면 오히려 이 과정이 가장 재미있는 구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론
월하의 야상곡은 기존 팬에게는 배신이었고, 새 팬에게는 첫사랑이었던 게임입니다. 저한테는 명백히 후자였고, 지금도 모바일을 켜고 1년에 한 번씩 알루카드를 깨웁니다. 메트로배니아라는 장르 이름 자체에 이 게임의 절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이 업계에 남긴 무게를 가장 잘 설명해줍니다.
메트로배니아 장르가 처음이라면, 혹은 레트로 게임에 관심이 생겼다면 이 게임을 첫 번째 선택지로 추천합니다. 모바일로 부담 없이 시작해보시고, 잔상을 남기며 걷는 알루카드의 움직임에 저처럼 한눈에 반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