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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그때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이렇게 소중한 물건인 줄 몰랐습니다. 마을버스 요금을 아끼고, 분식집 슬러쉬를 참아가며 모은 그 동전이 결국 어디로 향했냐면, 학교 앞 문방구 오락기 앞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참 웃기기도 하고 그립기도 합니다.
땀 흘리고 추위 떨며 했던 그 게임 한 판
직접 겪어보니 문방구 오락기는 정말 열악한 환경 그 자체였습니다. 야외에 그대로 놓여 있다 보니 여름엔 땡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조이스틱을 잡았고, 겨울엔 손가락이 곱아 버튼 누르는 감각이 무뎌질 정도로 추웠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애를 먹었던 건 태양 반사 문제였습니다. 아케이드 캐비닛(arcade cabinet)이란 게임 기판과 모니터, 조작부가 일체형으로 들어간 전용 게임 기기를 말하는데, 야외에 놓이면 모니터 화면이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심각한 수준이어서, 왼손으로 화면 위를 덮어 그림자를 만들고 오른손으로만 조작하는 기묘한 자세로 플레이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면서도 킹 오브 파이터즈나 메탈 슬러그 한 판을 끝내고 나면 이상하게 뿌듯했습니다.
자리도 문제였습니다. 앉는 자리라고 해봐야 우유 박스를 뒤집어 놓은 게 전부라, 10분만 앉아 있어도 엉덩이가 얼얼했습니다. 그래도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한 판 때리고 가는 그 루틴이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 시절의 작은 의식 같은 것이었던 셈입니다.
오락기에서 나오는 과자도 빠질 수 없습니다. 동전을 넣으면 게임과 함께 꾀돌이 같은 과자가 우르르 쏟아졌는데, 좋다고 바로 주워 먹었습니다. 야외에서 황사를 맞으며 묵혀진 과자를 아무 의심 없이 털어 넣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위생적으로는 참담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먹고 다녔는데 지금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그게 또 웃깁니다.
사실 그건 게임기가 아니라 자판기였다
제가 나이 들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문방구 오락기는 법적으로 게임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교육환경보호구역이라는 법령이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교육환경보호구역이란 학교 경계선으로부터 반경 200m 이내의 지역을 말하며, 학생의 학습과 정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의 설치를 금지하는 구역입니다. 여기서 게임 관련 기기도 당연히 금지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방구 오락기들은 어떻게 그 자리를 버텼을까요. 놀랍게도 이 기기들은 게임기가 아닌 자동판매기(vending machine)로 신고되어 있었습니다. 자동판매기란 동전이나 지폐를 투입하면 물품을 자동으로 제공하는 기계를 뜻합니다. 기기 아래 노란 딱지에 '자동판매기'라고 적혀 있었던 게 그 증거였습니다. 즉, 법적으로는 과자를 파는 판매기이고, 화면에서 돌아가는 게임은 덤이라는 구조로 짜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교묘하게 운영되던 이 기기들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건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였습니다. 2005년에 불거진 바다이야기는 경품용 아케이드 게임기를 이용한 사실상의 도박 사태로, 아케이드 산업 전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급격히 악화시켰습니다. 여기서 아케이드 게임기란 동전을 투입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즐기는 방식의 게임 기기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문방구 오락기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시점은 2007년 8월 3일입니다. 이때 학교 환경위생 정화구역 관련 법령에 따라 단속이 본격화되면서 사장님들이 어쩔 수 없이 기기를 치워야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어느 날은 오락기가 있고 어느 날은 없어졌다가를 반복하던 이유가 바로 이 단속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나니 그 수수께끼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문방구 오락기가 사라지게 된 주요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게임기 설치 금지로 자판기 편법 운영 시작
- 2005년 바다이야기 사태로 아케이드 게임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 2007년 8월 단속 강화로 학교 앞 오락기 대부분 철수
- 관련 법령은 2016년 2월 3일 삭제되었으나 이미 시장 자체가 소멸한 상태
문방구도 오락기도 함께 사라진 이유
오락기가 없어진 것도 아쉽지만, 제가 직접 느끼기에는 그 오락기가 놓여 있던 문방구 자체가 사라진 것이 더 실감 납니다. 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예전엔 어느 골목에나 있던 문방구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한 것이 눈에 직접 보이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오락기 보급률이 급감한 데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국내 초등학생 스마트폰 보급률은 2022년 기준 초등학교 4학년 이상에서 96.5%를 넘어섰습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쉽게 말해 주머니 속에 이미 게임기가 들어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동전을 들고 야외 오락기 앞에 줄을 설 이유가 사라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게임 플랫폼의 이동 자체도 결정적이었습니다. 국내 게임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 매출 비중은 2023년 기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아케이드 게임 개발 자체가 리듬 게임이나 격투 게임 쪽으로 좁아진 사이, 나머지 장르는 전부 콘솔이나 모바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기기가 설 자리가 사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오락실에는 무서운 형들이 있어 가기 꺼려졌던 반면, 문방구 오락기는 길가에 나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하고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자리가 통째로 사라져 버리면서, 친구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같은 화면을 보고 웃고 떠들던 경험 자체를 이제 할 수 없게 됐다는 게 가끔씩 마음에 걸립니다.
그때는 버튼을 너무 세게 눌렀다가 안에서 사장님이 나오셔서 호통을 치시면 온몸이 쭈뼛했는데, 그 호통 소리조차 지금은 그립습니다. 그 시절 100원이 만들어 준 소란스러운 오후가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구석진 문방구 어딘가에 먼지를 뒤집어쓴 오락기 한 대가 남아 있다면, 한 번쯤 동전을 넣어보고 싶습니다. 그때보다 동전은 많아졌는데, 정작 넣을 기계가 없다는 게 이상하게 서글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