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학교 끝나고 가방 질질 끌며 문방구 앞에 멈춰 섰던 기억,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동전 하나를 쥐고 어떤 기기를 먼저 차지할지 눈치 싸움이 시작되던 그 오락실 풍경. 저도 그 안에서 매일 야구왕 앞에 줄을 서던 아이 중 하나였습니다. 1993년 아이렘(Irem)이 출시한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그리고 그 게임이 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컵떡볶이 참아가며 모은 100원으로 끝판까지 깼던 벨트스크롤의 정석

    혹시 오락실에서 기다려본 적 있으신가요? 스트리트파이터나 철권 앞에 줄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저는 닌자베이스볼 배트맨 앞에서도 꽤 오래 기다린 기억이 납니다. 먼저 온 아이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은근히 길었거든요.

    이 게임의 정식 제목은 닌자베이스볼 배트맨(Ninja Baseball Bat Man)으로, 1993년 아이렘(Irem)이 제작한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장르는 벨트 스크롤(Belt Scroll)인데, 여기서 벨트 스크롤이란 화면을 살짝 눕혀 놓은 시점에서 캐릭터가 좌우뿐 아니라 앞뒤로도 이동할 수 있는 2.5D 계열의 액션 장르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플레이해보니, 첫 화면에서 동전을 넣는 순간 흘러나오던 "아예 아예" 하는 특유의 기계음이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소리가 선명하게 떠오를 만큼 인상적이었거든요. 다른 벨트 스크롤 게임들이 진지한 분위기를 내세울 때,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했습니다. 그 덕분에 초등학생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죠.

    당시 이 장르를 대표하던 캡콤의 파이널 파이트(Final Fight)는 어둡고 진중한 갱스터 무드가 기본값이었습니다. 반면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아동용 만화를 보는 듯한 가볍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저는 처음 이 게임을 봤을 때 그 색깔에 단번에 마음이 열렸던 기억이 납니다. 손발 달린 야구공이 굴러다니고, 총천연색 닌자들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그 요란한 비주얼이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졌거든요.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 동전을 넣을 때마다 울려 퍼지던 "아예~ 아예~" 효과음
    • 서로 초록색 캐릭터를 하겠다고 친구와 실랑이하던 그 장면
    • 시애틀, 라스베이거스, 시카고 등 미국 각지를 배경으로 한 스테이지

    저도 항상 초록색 캐릭터를 먼저 잡겠다고 옆에 있는 친구와 티격태격했습니다. 왜 그게 그렇게 중요했는지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때는 진심이었습니다.

    초등학생도 끝판까지, 낮은 난이도의 비결

    100원 하나로 끝판왕까지 깰 수 있는 게임이 과연 몇 개나 될까요? 닌자베이스볼 배트맨은 그게 가능했습니다. 아이렘 게임이라고 하면 보통 인 더 헌트(In the Hunt) 같은 악명 높은 난이도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 게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친절했습니다.

    핵심은 원코인 클리어(1CC, One Coin Clear)가 가능한 구조였다는 점입니다. 원코인 클리어란 동전 한 닢, 즉 추가 투입 없이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추가 동전을 쓰게 만드는 설계가 기본인데, 닌자베이스볼 배트맨은 그 반대였습니다.

    특히 보스전에서 잡기 커맨드를 반복하는 인피니트 그래플(Infinite Grapple) 패턴, 쉽게 말해 잡고 던지기를 무한 반복하면 보스가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체력만 깎이는 구조가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에 잡으면 두 번 공격이 들어가고, 떨어진 직후 다시 잡으면 또 두 번, 이걸 반복하면 어떤 보스든 무력화가 됐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작사가 아이렘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요.

    당시 닌자베이스볼 배트맨의 캐릭터별 특성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호세(Jose): 야구공에 맞아 초능력이 생긴 전직 야구 선수. 밸런스형 주인공.
    • 린(Lin): UFO에 납치되어 개조 수술을 받은 원숭이. 스피드형.
    • 로저(Roger): 어린아이가 조종하는 태양광 동력 로봇. 파워형.
    • 스티브(Steve): 이중인격의 말썽꾼. 독특한 기술 구성이 특징.

    국내에서 가장 유명했지만 정품은 가장 없었던 비운의 게임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90년대 대한민국 남자 초등학생 치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판매 실적은 최악이었습니다. 실제 타겟 시장이었던 미국에서는 아케이드 기판이 고작 40여 대 팔리는 데 그쳤습니다. 자국인 일본에서도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가장 인기 있었던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국내 오락실 시장의 구조 때문이었습니다. 합법적인 유통망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전파사(전자기기 수리점)에서 아케이드 기판의 복사본을 버젓이 판매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작권(Copyright)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던 시장 환경 속에서,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되면서도 제작사 아이렘에는 수익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실제로 국내 오락실이나 레트로 카페에서 지금도 간혹 이 게임기를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불법 기판으로 돌아가는 경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문방구에서 팔리던 CD도 대덕개발 같은 이름을 달고 유통된 비정품이었습니다. 제가 당시 그 CD를 집에서 돌려본 기억이 나는데, 그게 정품이 아니었다는 걸 훨씬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게임 산업의 지식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 보호 문제는 당시에도, 지금도 중요한 화두입니다. IP란 게임의 캐릭터, 스토리, 시스템 등 창작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의미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게임 시장의 불법 복제 문제는 1990년대 내내 업계의 주요 과제로 다뤄졌으며, 이 시기 정품 유통 비율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10년대 이후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의 판권을 한국인이 취득해 리메이크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결과물은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판권 자체가 아이렘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 행보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리메이크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보입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역시 이처럼 권리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레트로 게임 IP의 재활용 문제를 현행 저작권법 적용의 어려운 사례로 꼽은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정리하면,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이 흥행에 실패한 핵심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1. 파이널 파이트 등 상위 호환 벨트스크롤 게임의 범람으로 인한 시장 내 경쟁 심화
    2. 국내를 포함한 시장에서 만연했던 아케이드 기판 불법 복제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재미 하나만큼은 충분했던 게임이 수익 없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참 아쉽습니다. 동전 한 닢으로 끝판까지 쭉 밀어붙이던 그 짜릿함은 웬만한 최신 게임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었거든요.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이 리메이크가 된다면 그때 같이 하교하던 친구들과 다시 한번 초록색 캐릭터 싸움을 해보고 싶습니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그 친구들, 아마 이 게임 이야기를 꺼내면 바로 떠올릴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oXy6H1sDqg&list=PLj8VxR4OF6wWptI9d_HlgeX_KkOjqWGqE&index=6